정보화마을 칠곡 금남오이꽃동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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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낙동강

    낙동강은 칠곡 금남오이꽃동산마을의 농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마을의 농업용수를 제공하며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으며 여름이 되면 수많은 도시민들이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낙동강변에 모여든다. 농업에서 필수 불가결한 농업용수의 원할한 공급은 농촌에서는 축복이다. 금남외꽃동산 마을은 이러한 자연 환경으로 시기적절하고 뛰어난 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낙동강

    낙동강 이야기

    낙동강 (洛東江)은 ‘가락국(또는 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을 의미한다. 옛날 가야의 터전이었던 경북의 고령과 상주, 선산, 경남의 합천, 의령, 함안, 고성 지방은 모두 낙동강의 서쪽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 지역에서 보면 낙동강은 동쪽편에 위치한다. 고려시대 때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낙동강을 ‘황산진’ 또는 ‘가야진’으로 표기했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 역사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는 낙동강을 ‘낙수(洛水)’ 혹은 ‘낙동강’이라고 썼다.이 책에는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 36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18세기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도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라고 적고 있고, 이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낙동강’이란 이름이 표시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낙동강의 이름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낙동강의 첫 글자인 ‘낙(洛)’은 오늘날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경상북도 지명 유래집에는 ‘상주의 옛이름은 낙양 (洛陽)이고, 낙양의 동쪽은 낙동, 서쪽은 낙서, 남쪽은 낙평, 북쪽은 낙원(처음엔 나원으로 불리다가 오늘날 낙상면이 됨)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낙양’이라는 곳이 ‘낙’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낙양은 상주시가지의 서쪽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사직단터’라는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사직단터는 조선 선조 10년(1577년)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 지신(땅의 신)과 곡신(곡식의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자리이다. 학자들은 낙양에 있는 이 비석이 바로 ‘낙’의 뿌리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말한다 .

    낙동강전경 낙동강전경

    칠곡 금남마을의 낙동강 전경

    낙동강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 경북 칠곡군 석적면 중동일대에서 돌망치등 구석기유물과 울산시 울주군 서생의 빗살무늬토기, 부산 영도 동삼동, 조도, 다대포등지의 패총등 다양한 신석기유물이 발견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역사시대에는 청동기 및 철기문화의 꽃을 피운 지역으로 수십개의 부족국가들로 이루어 가야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천년고도 신라가 자리잡았던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며, 고려, 조선시대에는 일본과의 교통무역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지역으로 임진왜란과 6.25의 비극을 간직한 가슴아픈 사연이 깃든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근래에 들어와서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대동맥 역할을 담당하여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지역이다.

    낙동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