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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실성당

    가실성당

    가실성당이 설립된 것은 지난 1895년. 당시 이름은 '아름다운집' 이라는 뜻을 지닌 '가실(佳室) 본당'이었지만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낙산(洛山)'으로 바뀌었다. 이 땅은 1784년 한국교회 창립 당시 창령 성씨 집안의 실학자 성섭의 증손자 성순교(1860년 경신박해 때 순교)가 살았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가실성당

    조선 후기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끝나고 경상도 지방 선교책임자로 부임한 로베르(한국명 김보록) 신부가 신나무골(현 경북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에 대구본당을 설립하고 선교를 박차를 가하며 경상도 북부지역 선교의 전초기지를 마련하고자 신설한 것이 가실본당. 초대 본당주임으로 부임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가밀로 파이야스(한국명 하경조) 신부는 5칸 규모의 기와집 한채를 구입해 성당으로 사용하며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성주 선산 문경 상주 함창 군위 안동 예천 의성 김천 거창 등 경상도 북서부 일대와 충청도 황간, 전라도 무주를 아우르는 선교의 요람으로 관할 공소만 31개에 이를 정도였다.가실본당은 발전을 거듭해 본당 설립 6년만인 1901년 김천본당을 분가시킨 것을 시작으로, 점촌 퇴강(현재는 함창본당 관할공소) 왜관 본당 등 영남 서북부 지역에 자리잡은 수많은 본당의 모태가 된다.

    낙산본당의 현재 건물은 1922~1924년에 지어진 고딕식 벽돌조 건물.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과 대구 계산본당은 물론1896~1925년까지 30년간 한국 교회의 거의 모든 교회 건축물을 설계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박도행(Victor Louis Poisnel) 신부. 중국 기술자들이 벽돌을 한장씩 구워 성당을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유물과 유산은 현재 옛 사제관 내 유물관에 보존돼 있다. 현재 낙산본당은 신자수는 600여명(240여 가구)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다른 시골 본당에 비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108년이라는 역사를 지닌 본당에 대한 공동체 전원의 자부심과 이를 지키기 위한 남다른 노력 덕분이다.

    본당은 옛등걸에서 새순이 돋게 한다는 일념으로 지난 1986년 본당 설정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 내외적 재정비에 몰입했다. 본당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레지오와 반모임, 주일학교 활성화에 박차를 가해 내적 성숙을 유도했다. 그 덕분인지 현재 낙산본당은 전체 신자 가구의 90%가 농사를 짓는 상황인데도 20~40대가 전체 신자수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

    본당은 이와 함께 유휴공간을 적극 활용, 드넓은 잔디밭과 정원을 꾸며 성모당을 마련하고, 교육관을 건립하는 동시에 성당 정면에 순교자 성순교 가문의 신앙 유적비를 세워 본당 설정 100주년을 맞은 지난 95년 봉헌했다. 또 대희년을 기념해 감실을 비롯한 성당 내부 전체를 색유리화로 단장, 성당 자체가 아름다운 현대 종교미술의 전시공간이 되도록 변모를 꾀했다. 본당 설립 108년, 성당 건립 80여년이 지난 대구대교구 가실성당은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보고(寶庫)'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22~24년 고딕식 붉은 벽돌조 건물로 지어진 성당 건물 외벽은 세월의 풍파에 빛이 바래고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흔적도 있지만 아직 건재하다. 서울 명동성당과 대구 계산동성당 등을 지은 파리외방전교회 박도행(Victor Louis Poisnel) 신부가 설계를 하고, 중국 기술자들을 동원해 건축 현장에서 직접 벽돌을 구운 것은 물론 당시 본당주임이던 여동선(Victor Tourneux, 파리외방전교회) 신부가 망치를 들고 다니며 벽돌을 한 장씩 두드리며 일일이 확인했을 정도라니 80여년 풍상을 견디고도 남은게다.

    성당 내부에는 때묻은 옛 유산 외에 현대적 감각에 맞춘 종교미술 작품도 많다. 독일의 유명한 색유리화가 에기노 바이너트씨가 '엠마오의 제자들'(루가 24, 13-35)을 칠보로 형상화한 감실, 예수 전생애를 묘사한 창문 색유리화 등이 성당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대희년을 맞아 새롭게 성당을 단장하면서 은인의 도움으로 마련한 것이다. 당시 성당과 함께 지은 옛 사제관은 현재 유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당과 함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돼 있다. 사제관으로 발길을 옮기자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나무 기둥이 눈에 띈다. 건립 당시 백두산에서 베어 압록강-황해-부산을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사제관 건축에 쓰인 것으로, 지금도 건재한 위용을 자랑한다.

    유물관에는 공의회 이전까지 성당 제대 위에서 사용하던 십자가와 감실, 중앙 제대 왼쪽과 오른쪽에 설치돼 있던 성모성심 제대와 예수성심 제대의 감실, 촛대 등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또 본당 설립 초창기 신자들의 교적은 물론 대구교구 초대교구장 안세화 주교의 친필 공문 제1호 등 교회사의 중요한 사료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본당이 한창 번성하던 1960년대 신자들 교육용으로 사용하던 환등기(전기가 없던 시절 등불을 이용해 그림을 볼 수 있는 독일식 환등기), 성서 내용을 담은 대형 걸개 그림 등도 옛 자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주소 :경북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 614번지(718-801) T.(054)976-1102 Fax.(054)976-2077

    가실성당 유물관에 전시된 성물(聖物)

    가실성당 유물관에 전시된 성물(聖物)

    가실성당 주임신부 현익현 신부님

    가실성당 성체등

    성체등의 대부분은 제대 옆에 있지만 가실성당은 성체등이 제대 앞 천정에 매달려 있다.
    아직도 기름으로 밝혀지고 있는 등은 80여년간 꺼지지 않고 있다.